PSAT 언어논리, 기호화가 필수가 아닌 이유

 

쓴다고 예고했던 '그 주제'를 가져왔다. PSAT 언어논리 영역의 논리 문제를 풀 때 기호화가 필수가 아닌 이유. 간단하다. 기호화 안 해도 풀 수 있기 때문이다(…).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일러두자면 나는 기호화 자체가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분명 자연 언어를 기호화해서 득이 될 때가 있다. 다만 그게 문제 풀 때는 아니라는 게 내 생각이다. 왜 그럴까?

 

이전에 쓴 'for PSAT 자료해석' 시리즈와 달리 이 글은 철저히 주관적인 내 관점만을 담고 있으니 주의하기 바란다. 불편하면 뒤로가기 하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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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T 언어논리] 논리·퀴즈#11 '기호화'에 대해서

이번 글은 살짝 쉬어가는 회차로, PSAT 언어논리에서 자주 발생하는 '기호화'에 대한 논란(?)을 다룬다. 이미 블로그에 한 차례 포스팅한 바 있지만 하고 싶은 말을 다 한 것도 아니고 정갈하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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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화란?

일단 기호화의 정의부터 잡고 가자. PSAT 언어논리에서 말하는 기호화란 자연 언어로 쓰인 문장들을 논리 기호를 이용해 바꿔 표기하는 작업이다. 이때 쓰이는 논리 기호는 보통 명제 연결사들이다. PSAT 수준에서 쓰이는 건 그렇게 많지도 않다. 부정(~, ¬), 연언(∧, &), 선언(∨), 함축(→; 조건), 동치(↔; 쌍조건). 양화논리로 넘어가면 ∃, ∀가 등장하고. 

 

예를 들어, '미영이 대상이 아니거나 내가 대상이다.'라는 문장(자연 언어)을 '~미영∨나'처럼 바꿔 표기하는 걸 기호화한다고 한다.

 

기호화 예시
기호화 예시. 물론 내가 풀 때 저러진 않는다.

이 방식의 장점은 논리학적으로 불완전한 자연 언어를 깔끔하게 다듬어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논리 기호와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이라면 자연 언어로 쓰인 문장보다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정작 나는 아직도 연언 선언 기호 헷갈려서 좀 찾아 보고 왔다). 그렇다 보니 뭘 설명해주려고 할 때 (상대방이 기호를 안다면) 기호화해서 주는 게 훨씬 편하다. 내 해설 중에도 일부 기호화해서 써놓은 문제들이 있다.

 

그런데 문제 풀 때도 그 장점이 통하느냐 이거다.

영어 문제 풀 때 옆에 한글로 다 적어가며 풀어요?

블로그를 시작할 때만 해도 피셋 수험생들이 대체 뭘 공부하는지, 강의에서는 뭘 가르치는지 1도 몰랐다(후자는 아직도 잘 모르고 들어봤어야 알죠). 블로그에 댓글 달아주시는 분들과 대화하면서 혹은 오픈채팅방에서 나오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대강 저렇게 공부하는구나 관찰해왔다. 그런데 PSAT 언어논리에 관해서는 참 이해할 수 없는 종류의 질문들이 있었다. '이거 기호화하면 이게 맞냐'는 등의 기호화 질문들.

 

나는 블로그를 열면서부터 지금까지, PSAT 언어논리의 명제논리 문제들을 위의 논리 기호를 써서 기호화해놓고 푼 경우가 한 손에 꼽힌다. 일단 내가 논리 기호를 잘 모른다. 내 마지막 논리 공부는 대학교 교양 수업 때였는데, 거기서도 분명 기호 표기를 알려주긴 했으나 조건문 빼고 다 까먹었다(A+ 받았던 것 같은데 대체 어떻게…). 그래서 초기에 올린 컨텐츠 보면 부정을 ~p가 아니라 pX라고 써놓거나 연언을 쉼표로, 선언은 그냥 or로 써놓은 걸 볼 수 있다. 오히려 질문해주시는 분들이 기호를 써서, 그걸 못 알아먹으니까 계속 검색하다 보니 자연스레 기억된 정도다. 아, 연언 선언은 영원히 헷갈릴 듯.

 

그럼에도 PSAT 논리 문제 풀면서 기호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경우는 없다. 안 해도 대부분 잘 풀린다. 그러니 나는 자연스레 기호화 반대파(?)가 될 수밖에 없었는데, 가끔 이 주제에 관해 수험생과 대화할 기회가 있으면 이런 이야기를 해주곤 했다(직접 만나 들은 분들도 계시고).

 
논리 문제에 주어진 문장들을 기호화해가며 푸는 건 영어 문제 푸는데 한글로 번역해 적어 가며 푸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적확한 비유는 아니겠지만 대충 저런 느낌이다. 생각해보자. 자연 언어로 쓰인 문장을 기호화하려면 일단 그 문장이 논리 적으로 어떤 의미인지를 알아야 한다. 대충 접속어만 보고 끼워맞춰서 기호화하면 오류가 발생할 수 있으니, 완벽한 기호 화의 선결조건은 자연 언어로 쓰인 문장을 논리적으로 완벽히 이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장을 논리적으로 완벽히 이해했다면 그대로 문제를 풀 수 있다.

 

굳이 안 하고도 풀 수 있죠
오픈채팅방에서도 이 얘기 했었다. 'ㅇㅈ'의 주인공은 모 강사님

문장을 기호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바로 풀리는 것도 아니다. 기호화는 정말 자연 언어를 논리학의 언어로 '바꿔 표기'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문제 풀려면 그 다음 단계, 머릿속에서 끝내든 표를 그려보든 벤다이어그램을 그리든 뭔가 더 해야 한다. 안 그래도 PSAT 언어논리는 시간 관리가 핵심인 시험인데 뭐하러 기호화하느라 시간을 낭비하는가?

기호화 안 하고는 못 푼다면 다른 게 문제다

기호화를 안 하면 못 푸는 케이스가 있을 수 있다(실제로도 좀 봤다). 그런 케이스는 둘 중 하나라고 본다. 첫 번째는 논리적 사고력 자체가 부족한데 대충 기호화해서 풀리긴 풀리니까 이렇게 해야겠구나 하는 경우(보통 풀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두 번째는 기호화 안 하고도 풀 능력이 되는데도 관성적으로 기호화해서 풀다 보니 머리가 그렇게 굳어 버린 경우.

 

첫 번째 케이스는 사상누각이다. 앞서 말했듯 기호화를 제대로 하려면 우선 문장을 논리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게 안 되면서 기호화는 어찌어찌 되는 경우가 가능하긴 하다. 연결사만 대충 찾아서 이어주면 기호화도 대충은 된다. 그러나 말 그대로 대충 된 기호화기 때문에 문제도 대충 풀린다(…). 논리력을 보강해주지 않으면 오류, 실수로 이어진다. 근데 이 케이스는 거의 못 본 것 같다. 애당초 논리적 이해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기호화부터 잘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두 번째 케이스가 아주 많다. 전에 스밤PSAT스터디 멤버들도 많이들 이 증상에 빠져 있었다. 기호화를 별 문제없이 잘들 한다. 그렇게 푼다. 답도 별 문제없이 맞힌다. 그럼 기호화를 안 하고도 똑같이 할 수 있다는 거다. 안 해 버릇하니까 못 하는 것처럼 느낄 뿐이다. 스터디 하는 동안 가장 집중했던 것 중 하나가 풀이 과정에서 기호화를 걷어내는 작업이었고 괜찮은 결과를 얻었다.

 

어려운 문제 예시

위 지문에서 갑의 진술1을 그대로 읽든 단독범∧2층투숙 식으로 기호화하든, 우리가 받아들이는 의미는 같다. 범인이 단독범이면서 동시에 그가 2층에 묵고 있으면 이 진술은 참이다. 둘 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거짓이다. 이 사실이 기호화하면 보이는데 기호화하지 않으면 안 보인다? 그럴 수가 없다. 그건 말이 안 된다. 그럼 기호화는 어떻게 한 건데?

 

물론 조건문처럼 자연 언어가 논리적 의미를 완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경우 약간 렉이 걸릴 수 있겠지만, 그것도 공부하고 훈련하면 얼마든지 자연 언어만 보고도 논리적 의미를 완벽히 파악할 수 있다. 애당초 그러기 위해 논리 공부하는 것 아닌가? 논리 공부의 핵심은 기호화가 아니다. 적어도 PSAT 언어논리라는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공부라면 그렇다고 본다. 현직 가서 공문 내려오면 그거 기호화할 거임?

마무리

다시 일러두자면, 기호화가 그 자체로 쓸모없는 행위라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논리 문제만 보면 기호화를 향해 무지성 돌격! 하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얘기를 하는 거다. 자연 언어 그대로 놓고 풀기에는 너~~~~무 어렵다 싶은 문제를 맞닥뜨리면 기호화해서 정리하는 게 오히려 빠를 수도 있다(이런 문제). 다만 대부분의 논리 문제는 굳이 기호화해서 정리할 필요가 없는 수준이다.

 

피셋 관련해서 구글링하다 보면 PSAT 언어논리 칼럼 어쩌고 하면서 기호화가 필수라고 주장하는 강사들의 글을 볼 수도 있는데 수험생들에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그들도 밥벌이는 해야지 싶기도 하고… 저렇게 밥벌이하면 뭐하나 싶기도 하고…). 필수인 건 논리적 사고력이지 기호화가 아니다.

 

논리 문제에 적힌 명제들을 자연 언어 그대로 읽어보자. 문장들의 논리적 의미가 잘 이해된다면 그 상태로 기호화를 거치지 않고 풀이를 시도해보자. 논리적 의미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면 독해력과 논리력부터 키워야 한다. 그건 기호화를 공부한다고 느는 능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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