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재능vs노력: 당신은 어떤 스탯을 찍었나요?

     

    PSAT은 참 골때리는 시험이다. 전문성을 증명해주는 학위가 있는 것도 아니고(지식을 묻는 시험이 아니니 당연한 일이다), 대부분의 수험생이 살면서 접해 왔을 시험과는 그 결이 많이 다르다. 수능 이후 처음 맞는 취업시험이 PSAT이라면 더 답이 없을지도.

     

    이 시험은 참 여러 측면에서 답이 없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중 가장 큰 인상을 주는 게 소위 ‘재능론’이다. PSAT 성적이 사실상 타고난다고 보는 관점으로, 이 관점에 따르면 진입 시 점수가 낮은 사람은 성적을 합격선 위로 올리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개인의 한계치는 태어날 때 정해지고 그 이상으로 점수를 올리는 건 어려우니 만약 자신의 한계치가 합격선 밑에 있다면 피셋은 접어야 한다. 좀 더 거친 표현으로 바꾸면 ‘머리빨’이라는 얘기다. 물론 그와 대비되는 ‘노력론’도 있다. 합격선 정도까지는 노력으로 충분히 올릴 수 있다, 뭐 그런.

     

    사실 피셋이 재능이냐 노력이냐 따지는 건 수험생 입장에서는 매우 무의미하다(재능론이 옳다고 하면 준비 안 할 거야? 아니잖아). 하지만 나는 수험생도 아니고, 그러면서도 이 주제에 관해 궁금해하는 수험생은 주변에 넘치니 나름대로의 내 생각을 적어 보려고 한다.

     

    본문을 읽기 전에 반드시 숙지해둘 게 있다. 피셋에서 재능vs노력 논쟁은 답이 나올 수 없는 문제다. 사실 본인이 투입했는데 안 늘면 재능론자가 되는 거고, 투입해서 늘면 노력론자가 되는 거라서(마치 모의고사가 어려우면 퀄 나쁘다고 욕을 먹고 쉬우면 퀄 좋다고 칭찬을 듣는 것처럼). 속시원한 해답을 제시하는 글도 아니니, 심심풀이 삼아 읽는 걸 권한다. 괜히 생각 다르다고 불타지 마시고.

    우리는 모두 주사위를 굴리고 태어났다(직접 굴리진 않았지만)

    90년대에 태어나 어린 시절 게임을 좀 했다고 하면 십중팔구 굴려 봤을 주사위가 있다. 그 유명한 ‘메이플스토리’의 초창기, 새 캐릭터를 생성할 때 반드시 굴려야 하는 그 주사위다. 주사위를 굴릴 때마다 캐릭터의 초기 스탯이 재설정되는데, 주사위를 무한정 굴릴 수 있다 보니 원하는 초기 스탯 조합이 나올 때까지 노가다(…)를 하곤 했다. 예컨대 마법사로 키울 캐릭터라면 필요 없는 스탯인 힘과 민첩성에는 최솟값인 4가 뜨고, 지력과 행운에 나머지 스탯이 몰빵된 조합이 베스트였다.

     

    이런 조합 띄워놓고 실수로 한 번 더 눌러서 날려먹은 기억이 난다.

    육성에 진심이었던 모든 이들은 ‘쓸모없는 스탯’에 ‘44’가 뜰 때까지 주사위를 굴리고 또 굴렸다. 이유는 간단했다. 생성 이후 똑같이 투자를 하더라도 ‘44’를 맞춘 캐릭터가 그렇지 않은 캐릭터보다 아주 조금이라도 유리했기 때문이다.

     

    매우 애매한, 망한 분배.

    똑같이 레벨업을 하고 같은 방식으로 육성해 같은 장비를 사용한다면, 위와 같이 망한 주사위(…)로 태어난 캐릭터가 ‘44’를 맞춘 캐릭터의 능력치를 뛰어넘는 건 불가능하다(컨트롤 차이는 없다고 치자). 그러니 목숨걸고(?) 주사위를 굴릴 수밖에.

     

    우리도 이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서 태어났다. 우리가 직접 주사위를 굴리지 않았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이미 정해진 초기 스탯, 우리 모두가 재능이라고 부르는 그 능력치는 우리가 태어난 뒤에 건드릴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극단적인 예로 메시의 재능을 갖고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그런 수준의 재능을 후천적으로 습득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하다고 말한다면 양심이 좀 없는 거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태어나 보니 내 초기 스탯이 이렇더라’ 깨닫는 것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좀 억울하기도 한데, 어쩌겠나. 인생 불공평한 거 다들 알잖아. 재능만 불공평하면 오히려 다행이지.

    스탯 포인트, 잘 찍었나요?

    꼭 메이플스토리가 아니더라도, 웬만한 RPG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레벨업하면 스탯 포인트를 얻고, 원하는 스탯에 이를 분배해 캐릭터를 성장시킬 수 있다. 실질적으로는 원하는 스탯이 아니라 필요한 스탯에 분배한다고 해야 맞겠지만, 어쨌든. 마법사 캐릭터라면 당연히 지력 위주로 스탯 포인트를 찍어야 하고, 전사 캐릭터라면 힘 위주로 스탯 포인트를 찍어야 한다. 궁수인데 찍으라는 민첩성은 안 찍고 HP만 잔뜩 찍으면 ‘망캐’가 된다(내가 그 짓을 한 번 해봤는데, 커닝시티에 검은보따리 풀렸을 때 안 죽고 버텼던 거 말고는 아무 득이 없었다). 메이플스토리에서 스탯 포인트를 잘 분배하는 건 초기 스탯을 잘 뽑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보다도 훨씬 중요했다. 초기 스탯은 차이 나 봤자 8 정도지만, 스탯 포인트 분배는 완전 자유롭게 할 수 있으니까.

     

    우리네 현생이라고 크게 다를 게 있을까? 태어난 뒤 어떤 환경에서 무얼 하며 성장하느냐는 유전적 재능 못지않게 중요하다. 성인이 되기 전 성장 과정에서 뭘 학습하느냐에 따라 스탯 포인트의 배분이 달라진다. 물론 유전적 재능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앞서 든 예시마냥 한 분야의 정점이 되려면 스탯을 잘 찍는 것 이전에 초기 스탯까지도 완벽에 가깝게 타고나야 한다. 말하지 않았나. 똑같이 투자하면 초기 스탯 잘 뽑은 놈이 이긴다. 그러나 인생은 게임과 달라서 모두가 정점이 되기 위해 살지도 않고, 그게 가능하지도 않다. 특히 이 글에서 이야기하려는 피셋이라는 시험은 정점 수준의 능력을 요구하지 않는다. 딱 합격선 넘길 만큼의 능력을 요구할 뿐이다. 그 선은 스탯만 잘 올려줘도 충분히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PSAT을 처음 접하는 시기가 이미 스탯 분배가 어느 정도 완성된 후라는 것이다(10대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아직 스탯 포인트가 차고 넘칠 테니 안심해도 된다). 레벨이 높아질수록 레벨업에 필요한 경험치가 늘어나듯, 사람이 나이를 먹을수록 스탯 올리기가 힘들어진다. 20대 전과 후만 비교해도 무지막지하게 차이가 난다. 10대까지 쑥쑥 성장하던 뇌와 슬슬 노화에 시동을 거는 뇌는 다를 수밖에 없다. 보통의 수험생은 그 고속성장기를 다 지나서 PSAT에 진입한다. 피셋은 “야, 너 스탯 좀 보자” 하는 시험이니 진입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스탯창을 열어봐야 하는데….

     

    게임에서는 위와 같이 (기본스탯+추가스탯)을 분리해서 보여주지만 우리한테는 그런 거 없다. 그냥 “내 능력 얼마”만 알 수 있을 뿐, 그중 재능이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고 노력해서 찍은 스탯은 얼마인지는 알 수 없다. 하물며 스스로도 그러한데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오죽할까. 능력이 100인 사람이 재능 1에 노력 99인지, 재능 99에 노력 1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 그가 성장하면서 온갖 논리·추리 문제책들을 섭렵하며 스탯을 찍었는지, 재능 한 컵에 노력 한 방울 탄 건지 어떻게 구분할 건가. 물론 진짜 천재들은 옆에서 대충 보기만 해도 티가 나지만… 애초에 그런 이들은 이 논쟁에서 논외다. 고작 PSAT에서 그런 사례를 떠올리지는 말자.

     

    자신의 능력치에서 재능과 노력을 구분할 수 없을 때 마음이 편해지는 가장 쉬운 방법은 재능의 비중을 높이는 것이다. 노력을 안 한 건 자신의 탓일 수 있지만 재능이 없는 건 자신의 탓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이 피셋 재능론이 힘을 얻는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본다.

     

    물론 ‘재능’의 정의를 살짝 틀면 다른 접근이 가능하다. 나는 재능이라는 말을 유전적으로 타고나는 능력으로 한정해 사용하지만, 사실상 자의적 선택이 불가능한 ‘성장 환경’까지도 여기에 포함시킨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소위 ‘수저’의 색까지 내가 고를 수는 없고, 성장 환경은 거기에 막대히 큰 영향을 받으니까. 그 측면에서 반박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사실 수험생 입장에서는 굉장히 무의미한 이야기일 수 있다. 내 능력치가 지금 50따리인데, 그게 재능 100%든 노력 100%든 무슨 소용인가. 이걸 100으로 올릴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하지.

     

    인생에 이런 주문서는 없기 때문에, 진입 시점의 능력치 자체를 재능으로 여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안타깝게도 그 가능성은 알 수 없다. 정확히는 ‘기회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시간 내에’ 합격선을 넘기는 게 가능한지는 매우 알기 어렵다. PSAT은 합격선만 넘기면 땡인 시험인 데다가 당락을 가르는 본 경쟁은 2차 시험에서 일어나니, 고작 1차 시험인 피셋에 시간을 무한정 투자할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 가능성을 알기 어려운 이유는, 또 게임에 비유하자면, 당신에게 남아 있는 스탯 포인트가 얼마나 되는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진입점수를 잴 겸 피셋 기출을 한 세트 풀어봤다고 하자. 합격선에서 10점 부족한 점수가 떴다. 그런데 당신에게 (당신도 모르는) 스탯 포인트가 운 좋게도 10점어치만큼 남아 있다면, 그걸 잘 찍어주기만 하면 비교적 손쉽게 실력을 올릴 수 있다. 반면 더는 찍을 스탯 포인트가 없는 상태라면, 레벨을 더 올려서 스탯 포인트를 얻어야 하니 앞서의 예보다 훨씬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스탯 포인트가 남았는지 확인하는 것조차도 어느 정도 해봐야 아는 일이라 가능성을 예단하기 어렵다.

     

    어느 정도 해보고 나서야 판단의 기로에 설 수 있다. 나 포인트 좀 남았다 싶으면 가는 거고, 없다 싶으면 고민하는 거고. 후자라면 빠르게 결단해야 한다. 합격 목표가 확고하다면 PSAT에 빡세게 투자해서 승부를 보거나, 그렇지 않다면 기회비용을 고려해서 빨리 접든가.

    사족

    1. 간혹 나를 재능충 취급하는 사람들 때문에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글이다. 재능충 취급받을 만큼의 실력인지도 잘 모르겠으나(나보다 잘하는 사람 ㄹㅇ 널렸다), 어쨌든 나는 스스로를 노력형에 가깝다고 본다. 그 노력을 어릴 때 다 해놔서 눈에 안 띄는 거지(…).

     

    2. PSAT이 아무리 배경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라고 하지만 사실 의무교육과정(중학교 이전을 말한다)의 지식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 수준의 지식조차도 결여된 질문들도 굉장히 많이 받는데, 그 상태로 재능 탓하면 정말 답이 없다. 그냥 본인이 공부를 안 한 거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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