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SAT 노베이스란 무엇일까?

PSAT에 진입할 때 '피셋 노베이스 ○○점'을 언급하며 고민하는 케이스를 심심찮게 본다. 볼 때마다 뭔가 어색했다. 진입점수라면 말이 되는데 '노베이스' 점수는 도대체 뭔가. 피셋에 노베이스가 어떻게 존재하지? 내가 노베이스라는 말의 뜻을 잘못 이해하고 있나 싶어 찾아봤다.

 

'시험이나 교과목에 대해 기초가 없는 상태'라는 정의를 빌린다면 정의할 게 또 생긴다. 피셋의 '기초'란 무엇인가. 단순히 이 시험을 한 번도 접하고 준비해보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노베이스라고 말하기에는, PSAT은 적성시험이다. 특정 전문지식이 아니라 논리적·비판적 사고력, 자료 분석·추론능력, 의사결정·판단능력 따위의 '사고력'을 평가하는 시험. 그럼 피셋 노베이스라는 말은 본인의 저 능력치들이 죄다 0이라는 뜻인가?

 

물론, 대부분은 그냥 '진입점수'와 '노베이스 점수'를 같은 뜻으로 사용하고 있을 테니 이런 식의 태클은 피해갈 수 있다. 그러나 (약간 전공병 같긴 하지만) 서로가 가진 단어의 정의가 어긋나면 소통에 오류가 생기거나 사고와 판단에 오류가 생긴다. PSAT 진입 시점을 문자 그대로의 'No Base'로 인식하면 안 된다는 게 이 글을 적는 이유다. 피셋의 베이스는 태어난 시점부터 쌓이기 시작하니까.

 

발그림 ㅈㅅ,,,

공시생 밤톨군이 23세에 공시판에 발을 들여 PSAT에 진입했다면, 23세 이전에 밤톨군이 해온 거의 모든 활동과 공부가 다 피셋의 베이스가 된다(물론 피셋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제각각일 것이다). 그러니까 적확한 의미의 노베이스 상태로 피셋에 진입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고등학교 때 사탐 사회문화를 선택해 공부했던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자료해석에서 진입 시점부터 차이가 날 거고, 어린 시절 창의력수학 사고력수학 따위를 했던 사람과 안 했던 사람은 상황판단(+논리퀴즈)에서 진입 시점부터 차이가 날 거다. 독서량은… 설명할 필요가 있나?

 

이 굉장히 당연하면서도 왠지 슬퍼지는 이야기를 굳이 하는 건, '진입 시점'을 노베이스로 생각해 버리면 나보다 진입점수가 높은 사람과의 차이가 '선천적 재능(≒지능)'에 있다는 설명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정신적으로 공부하기가 참 힘들어진다. 지능 차이 때문에 점수가 안 나온다는 설명을 받아들이면 뭘 할 이유가 없어지잖나. 어차피 지능빨이면 그냥 2차만 파다가 시험 보러 가지 준비를 왜 하나. 붙으면 2차 보고 떨어지면 접으면 되지.

 

그러나 내가 진입 전까지 읽은 텍스트의 양보다 다른 누군가가 읽은 텍스트의 양이 월등히 많다면, 그 사람이 나보다 언어를 잘하는 상태로 진입하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사칙연산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온 나보다 친하게 지내온 사람의 자료·상판 진입점수가 더 높게 나오는 것도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없는 적성을 열심히 만들어서 시험에 붙고 싶다면 그들이 먼저 쌓고 들어온 베이스를 따라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 당연히 '당신은 잘못 살았어요!'라는 게 아니다. 피셋 진입점수가 높은 사람들(나를 포함해서)은 그냥 운이 좋을 뿐이다. 내가 그냥 그렇게 살았을 뿐인데 마침 이 시험이 그런 걸 원하는 거다. 반대로 내가 책 읽고 공부하느라 포기했던 수많은 다른 활동들을 또 다른 어딘가에서 요구하겠고, 그 필드에서는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 될 거다.

 

최근 상담할 때 밀었던 그림인데 나는 피셋에서 말하는 아주 막연한 '사고력'이라는 개념을 이렇게 생각한다. 지능과 지식과 경험의 합. 피셋 진입자들은 십중팔구 성인이니 지능은 거의 통제되었다고 봐야 하지만 지식과 경험에는 변수를 줄 수 있다. 지능의 영향을 부정하려는 건 아니다. 지능(그냥 웩슬러 점수라고 생각하자)이 너무너무 낮으면 지식과 경험으로 피셋 합격선 이상까지 커버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어찌 보면 이 시험의 진정한 목적은 '이미 베이스를 잘 쌓으며 살아온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에 의도대로 굴러가는 게 얼마나 있다고. 피셋 준비로 발생하는 (시간적) 기회비용을 감수해가며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면 베이스에서 벌어진 갭을 메우기 위해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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